4월 16일 일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 밍기적거리다가 핸드폰을 열었는데,
'세월호 참사 9주기'라는 짧은 헤드라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벌써 9년이나 흘렀구나. 엊그제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고
이내 집안일 등을 하며 여유로운 주말 아침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가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고 하더군요.
엄마랑 둘이 오붓하게 보고 싶다고. (큰애는 이미 봤음)
그래서 예매를 하고 점심 쯤 보러 갔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목이 참 일본스럽군.'이라는 생각만 하고 보게 되었는데,
(실은 영화 초반부는 좀 재미있게 보다가,
계속 되풀이되는 흐름에 중반부쯤에는 좀 졸기도 했습니다. )
저 혼자 이렇게 울었나요....?
둘째가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엄청 재밌는데 왜 울어?" 하더군요 ㅎㅎ
후반부에 스즈메가 어린 스즈메를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너무 슬퍼서 저도 모르게 계속 눈물을 훔쳤습니다..
있지, 스즈메.
너는 분명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것이고
널 좋아하게 될 누군가와 많이 만나게 될 거야.
지금은 한없이 새까만 어둠 속이지만,,
언젠가는 꼭 아침이 와.
아침이 오고, 다시 밤이 오고,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넌 어느새 빛 속에서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틀림없이 그렇게 돼.
그렇게 되도록 다 정해져 있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스즈메를 방해할 수 없어.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될 거야.
-스즈메의 문단속 中-
저는 세월호 참사나 얼마 전 있었던 이태원 참사 등을 비롯해
이런저런 이유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저마다 상처를 품고 살아가고 있을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대사 중에,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네가 받을 것은 이미 이전에 다 받았어'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순간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로 아빠를 잃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아빠와 단절된 탓에
슬픔이나 우울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저 무감각했습니다.
목놓아 울지도 않았고, 괴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겉으로 슬픈 '척'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슬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워서 현실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거든요.
사실 그때 당시 기억이 거의 나지 않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다시 등교를 하는 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마냥 죽상을 하고 앉아 있으면 친구들이 불편해할 것 같고,
웃으면 또 이상해 보일 것 같았습니다.
결국 저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때부터일까요.
저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되면
제 의도와 상관없이 기억을 통째로 날려 버리게 되었습니다.
강제 기억 상실이죠.
그래서 사실상 살아오면서 꽤 많은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뇌는 스스로가 굉장히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
일 밖에 몰랐던 부모님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을 느끼며 산 것은 아니지만,
정서적으로는 크게 받은 것이 없다고 느껴왔습니다.
할머니를 포함한 시댁과 엄마 사이에서 중간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아빠가 원망스러웠고,
그 안에서 본인의 괴로움을 돌보기도 벅차서 따뜻함을 주지 못했던 엄마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따뜻함으로 엄마를 대하기가 무척이나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네가 받을 것은 이미 이전에 다 받았어'
이 대사를 듣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러곤 유년기 때 행복했던 순간들이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집안의 공기를 100% 눈치채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는
사랑받는다는 기억, 행복한 기억들이 그래도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 나도 사랑받은 사람이었지 참.'
이런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저의 지금 모습은 빛나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지요.
지금도 물론 불안하고 힘든 요소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은 어릴 때 받은 사랑에서 온 것일 겁니다.
두서없이 말이 길어졌는데,
내가 지금 가진 소중한 것들과,
그 소중한 것들을 있게 해 준 잊힌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 이게 영화지, 이게 예술의 힘이지."
이런 말이 절로 나왔네요.
다음 날 월요일 아침,
아이들이 학교 가면서 "다녀오겠습니다"하며 현관문을 나서는데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그 평범한 아침 인사가
유독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잘 다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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