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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리틀 포레스트> 힐링 영화, 퇴사 권장 영화

by 양총 2023. 1. 24.

<2018. 02. 28 리틀 포레스트>

1. 소개

이 영화는 2018년 개봉작으로,  당시 회사원들 사이에서는 일명 '퇴사 권장 영화'로 많이 불렸습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감독하고 각색한 임순례 감독의 작품으로, 김태리(혜원)/류준열(재하) 그리고 문소리(혜원 엄마), 진기주(은숙) 등이 출연했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 원작 만화 <리틀 포레스트>를 각색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의 리틀 포레스트 연출이 원작보다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입니다. 땅과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 그리고 그를 통해 소통하는 사람 간의 관계를 따뜻한 분위기로 잘 그려낸 영화입니다. 

2. 줄거리

노량진 고시 학원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혜원은 도시 생활에 지쳐 고향(정확히는 아빠의 고향)에 돌아옵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딸을 키워놓고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을 꿈꾸며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 엄마 없는 빈 집만이 혜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혜원은 집 앞 텃밭에 나가 손을 호호 불어가며 서리 앉은 배추를 캐내어 와서 배추 된장국을 끓여 끼니를 때웁니다. 다음 날 마당에 나와 있던 혜원은 트럭 한 대가 잠시 멈춰 서고 그 안의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웃는 것을 발견합니다. 혜원과 마찬가지로 도시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내려온 초등학교 동창생 '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혜은과 재하와는 반대로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의 삶을 꿈꾸는 동창생 '은숙'이 혜원을 찾아옵니다. 

혜원은 수능이 끝난 후 그 당시에는 알아 들을 수 없던 말만 가득 채워놓은 편지 한 통만 남긴 채 떠나버린 엄마가 이해되지 않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떠나간 엄마와 엄마의 말들은 혜원이 돌아온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다시 돌아오는 동안 음식을 해 먹을 때마다 혜원의 머릿속에 맴돕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엄마의 말들이, 그리고 마지막 남기고 간 편지의 내용이 점점 이해 가기 시작합니다. 

3. 감상

이 영화를 몇번이나 다시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머릿속을 비우고 싶을 때, 생각을 단순하게 하고 싶을 때, 심란한 마음이 들 때마다 방 불을 꺼놓고 대사가 많지 않은 이 영화를 켜놓고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습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시골은 나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나 또한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봄이면 새하얀 사과꽃이 지천에 피어 있어 가로등 없는 밤길을 걸어도 그리 어둡지 않았습니다. 여름에는 짙은 풀냄새 가득한 사과나무 밭에서 적과(큰 열매를 남겨두고 작은 열매를 솎아 내는 일)를 돕느라 바빴습니다. 사과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앉아 있으면 땡볕에 그을린 얼굴에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점심 먹고 얼마가 지나면 적과 하는 일꾼들에게 간식을 날라주는 일은 주로 나와 언니의 일이었는데, 얼음 띄운 흑설탕물이나 미숫가루가 주 메뉴였습니다. 땡볕에서 일하다가 잠시 쉬며 마시는 흑설탕물과 미숫가루가 얼마나 맛있는지, 안 먹어 본 사람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찜질방 황토방에서 뛰쳐나와 먹는 식혜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가을에는 새빨간 사과를 수확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일 끝나고 저녁 먹은 후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는 보석이 알알이 박힌 꿀사과는 너무 맛있었지만, 매일 지천에 널린 사과만 먹는 게 지겹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서울 청과상에 사과를 납품하고 돌아오는 길 사온 귤 한 박스가 깔 필요도 없이 편리해서 더 맛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은 사과를 먹으면서 '역시 과일은 사과 만한 게 없어'라고 되뇌게 됩니다. 겨울과 이른 봄에 걸쳐서는 사과나무 끝에 가을 수확 때 미처 다 따지 못한 사과들이 군데군데 달려 있었습니다.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사과는 갈색을 띠게 되는데, 모르는 사람은 썩은 줄 알겠지만 이것이 또 별미입니다. 따서 한입 베어 물면 사과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주스입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나무 끝에 매달린 갈색 사과즙을 짜 먹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음식이 주는 힘은 큽니다. 어린 시절 아련한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해 줄 사람이 없어져 다시는 먹지 못할 음식은 아린 마음이 들게 하기도 합니다. 분명하게 의식하며 살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그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살아내는 밑천이 되어 주고 있을 것입니다. 

'내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어떤 음식을 기억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조금 힘들고 고되더라도, 인스턴트나 배달음식 대신 엄마의 기억을 소환할 수 있는 진짜 음식을 많이 해주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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