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그린 북>은 평점이 거의 만점에 육박하는 영화입니다. <덤 앤 더머>의 감독 피터 패럴리가 제작했으며, 흑인 클래식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수상할 만큼 그 작품성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린북'은 미국 남부 여행 시 흑인들이 머무를 수 있는 숙박 시설이나 식당, 술집 등을 정리해 놓은 여행 소책자를 가리킵니다. 이 영화에서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그려지는 소재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1962년, 남부 지방을 여행하는 흑인에게는 그린북이 필수였던 시기입니다.
2. 줄거리
클럽에서 주먹 쓰는 일을 하는 백인 '토니 립'은 클래식 피아노 연주를 하는 흑인 '돈셜리' 박사의 피아노 연주 여행을 위한 운전기사가 됩니다. 첼로와 베이스 연주자도 함께 동행하지만 백인인 그들은 서로 다른 차로 이동하게 됩니다. 연주가 끝난 후에도 일행은 돈셜리 박사와는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습니다.
켄터키주에서 돈셜리 박사는 흑인들만 묵는 숙소에서 따로 지내게 되고, 밤에 혼자 술집에 갔다가 백인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게 됩니다. 흑인은 밤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돈셜리는 '연주가로서'는 환영받지만 '인간으로서'는 모욕을 당하게 됩니다. 화장실을 찾는 돈셜리에게 건물 밖 흑인 전용 화장실을 쓰라고 한 것입니다.
버밍햄에서 역시 연주가로서는 호텔 총지매인에게 귀빈 대우를 받으며 환영받지만, 대기실은 주방 안쪽 창고방이었고, 저녁 식사도 해당 호텔에서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연주가로서는 섭외했지만, 흑인이기 때문에 레스토랑은 입장 금지라는 황당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서브 연주자는 백인이라서 레스토랑에 앉아 있고, 메인 연주자는 흑인이라서 입장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습니다. 돈 셜리는 결국 공연을 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호텔을 떠납니다.
토니는 돈셜리가 왜 모욕을 당하면서 남부에 공연을 하러 왔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첼로 연주자가 토니에게 흑인 재즈 보컬리스트 냇킹콜에 대해 이야기 해줍니다. 당시 냇킹콜은 흑인이 백인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백인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했습니다. 냇킹콜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모욕당할 줄 알면서도 용기를 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토니는 돈 셜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운전 중 한 경찰이 토니에게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왜 흑인을 위해 운전을 하냐고 묻자, 토니는 자신이 이탈리아인이라고 답하고, 그 말을 들은 경찰은 토니에게 '반 검둥이'라고 말해 토니는 경찰에게 주먹을 날립니다. 돈 셜리는 잠깐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쓴 토니를 원망합니다. 그리고 "폭력으로는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자신의 품위를 지킬 경우에만 이길 수 있는 겁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돈 셜리는 백악관에 도움을 요청해 품위 있게 상황을 모면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돈셜리는 피곤해하는 토니를 위해 대신 운전을 하고, 둘은 폭설로 인해 간신히 크리스마스 이브에 맞춰 집으로 돌아옵니다. 토니는 차에서 내리며 크리스마스이브 파티에 돈 셜리를 집에 초대하지만, 돈셜리는 거절하고 혼자 집으로 가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다시 집을 나서 어디론가 향합니다. 한편 토니는 가족들에게 지난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누군가 집에 방문합니다. 돈 셜리였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돈셜리를 환영해 줍니다.
3. 감상
돈 셜리는 차별 받는 흑인이었지만, 토니 역시 토박이 백인들에게 차별받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였습니다. 본인 역시 차별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은 자기보다 더 아래라고 생각해 차별을 한 것입니다. 시집살이를 당해본 사람이 더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당했으니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으로 며느리에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당한 만큼 더 괴롭히는 게 참 이상한 이치입니다.
인종도 성향도 습관도 각기 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맞춰가며 알콩달콩하는 중년 남자 둘의 모습이 코믹하고 귀엽기도 했고, 토니의 아내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쓰는 것을 돈 셜리가 도와주는 장면은 마음이 따뜻해질 정도로 훈훈했습니다.
나도 길다면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에게 선입견을 갖거나 차별적 시선을 갖고 행동하기도 했을 터입니다. 호텔 지배인이 의도적이지 않게 관습을 따랐던 것처럼, 우리 역시 너무 오랫동안 당연시되어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게 차별적 태도를 취했을지도 모릅니다.
차별이나 편견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용기를 냈던 냇킹콜의 이야기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용기를 내어 토니의 집을 찾은 돈셜리를 보면서, 가족 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함께 사는 가족에게는 점점 서로에 대한 관심을 당연하게 여기고 표현하지 않는 것에 습관이 되어 어느 순간 생판 남에게 표현하는것보다 더 어색해지는 순간이 오곤 합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방문 잠그고 들어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사춘기 아이에게 '널 믿는단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온 우주의 기운을 다 모아도 모자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는 어쩌면 장벽처럼 두꺼운 장애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얇디얇은 실크 커튼 정도의 칸막이만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서로의 거리가 더 멀어지지 않도록, 용기 내어 제 때에 제대로 표현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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