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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가버나움> 묵직한 여운, 아동 인권

by 양총 2023. 1. 31.

<Capernaum, 2018>

1. 소개

이 영화는 아동학대, 아동매매, 불법 체류, 조혼 등 여러 가지 어두운 사회 문제를 그리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아동 인권에 대해 매우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실적인 묘사가 인상적인 영화로, 그 캐스팅 비화 역시 비범합니다. 주인공 '자인'은 실제 시리아 난민으로, 감독이 길거리에서 캐스팅을 한 아역이며, 칸영화제 참석 일주일 전까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라고 합니다. 동생 '사하르' 역시 껌을 팔다가 캐스팅되었고, 불법체류자 '라힐' 역을 맡은 여자도 실제 불법 체류자였습니다. 라힐의 딸로 나온 아기는 촬영 중 친부모가 체포되어 감독이 한 달 가까이 대신 부모 노릇을 하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자인은 실제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 대본을 볼 줄 몰랐다고 합니다. 칸 영화제 초청 이후, 자인은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노르웨이에 정착하고, 학교에 다니게 됩니다. 

2. 줄거리

이야기는 재판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제가 부모를 고소했어요." "왜 부모를 고소했죠?"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

그리곤 주인공 자인의 과거 모습이 비춰집니다.

자인은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의사 소견으로 12살 정도라고 추정만 할 수 있습니다. 무책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인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합니다. 그의 동생 중 유독 친했던 사하르가 첫 월경을 하게 되자, 자인은 동생이 돈에 팔려갈까 봐 도망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부모는 사하르를 나이 많은 남자에게 팔아버립니다. 혼자 집을 나온 자인은 불법체류자인 '라힐'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자인의 부모와는 다르게 아이에 대한 애착이 강했습니다. 자인은 라힐이 일을 나간 사이에 아기를 대신 돌봐줍니다. 라힐은 불법체류로 결국 구금이 되고, 자인은 또 어린 아기를 혼자 돌보게 됩니다. 그러던 중 한 중개인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알려주고, 시장에서 만난 여자 아이로부터 본인 증명 서류가 있으면 난민증을 발급받아 동유럽 국가로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자인은 소녀의 말에 희망을 얻고 본인의 증명 서류를 찾기 위해 집으로 돌아옵니다. 강제로 조혼을 당해 팔려갔던 사랑하는 동생이 임심 했다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자인은 남자를 칼로 찔러 감옥에 갑니다. 그리고 나간 재판장에서 위와 같이 말한 것입니다. 

3. 감상

낳아줬다고 해서 다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실감이 났던 영화입니다. 주인공 자인을 보면서, 어린아이가 어떻게 어두움을 저리 잘 연기했을까 싶었는데, 실제 시리아 난민이었다니, 그 사실부터 충격적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사는 게 개똥 같아요. 내 신발보다 더러워요." 

어른도 웬만큼 참담한 상황에 놓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말인데, 어린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정도면 얼마나 처참하고 불행하다고 느꼈던 것일까요. 사실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멀리 레바논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도 아동의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일은 무수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게임에 빠져 갓난아이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아이를 학대한 끝에 죽게 하는 등, 이런 기사가 보이면 그 참담함을 마주하기가 힘들어 꺼버리게 됩니다. 

저는 몇 달 전부터, 집에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사료를 주고, 배변 패드를 갈아주고, 씻기고, 털을 빗겨주고, 산책을 시켜주면서, 생명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큰 책임감이 뒤따르는 것인지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동물을 키우는 데도 이렇게 무한한 책임감이 느껴지는데, 하물며 인간은 어떨까요. 

원하는 것이 있냐고 묻는 재판장에게, 자인은 "애를 그만 낳게 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무책임한 부모에 대한 원망 섞인 말투로 태어나서 자신처럼 살아가게 될 아이의 인생을 걱정하는 자인의 대답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크레디트 엔딩을 보고서야, 출연진들이 꾸며진 배우가 아닌 현실 속의 인물들이란 것을 알았는데, 그것을 알고 나니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더 희미해지면서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작진은 영화에 출연한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영화를 위해 이용한 것이 아닌, 그들의 삶을 진정으로 응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한 것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자인이 증명사진을 찍으면서 미소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치고 찌든 영화 속의 자인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맑은 미소로 웃는 자인을 보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부디 이 시간,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자인의 과거처럼 불행에 눈물짓고 있을 아이들이 존중받고 사랑받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어, 다른 이를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좋은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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